The idea of approxi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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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Econoim 2022. 1. 2. 06:27

이 책은 밀도가 너무 높아서 다 읽고 나서도 어디서부터 소감을 써야하나란 생각이 오래 들었다. 낮에 구입한 책을 새벽 3시까지 읽고 지금 새벽 5시까지 정리해보는 독후감.

이 책이 좋았던 점. (1)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수십년 관찰하고 해결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온 것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고 (2) 장애라는 화두를 놓고 그저 정치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너가 진짜 어디까지 제대로 생각해봤냐라는 식의 사고실험을 끝까지 몰고가는 깊이에 반했고 (3) 잘못된 삶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와 공동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도 좋았다.

(1) 이 책이 정말 좋은 책인 이유는, 책의 시작이 "나를 바라보는 방법"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화 경험이 농축된, 그리하여 저자가 말하는 '우아한' 방법이나 '수용'을 한다는 것의 의미들이 속물, 품격, 의전, 존중, 존엄이라는 단어와 얼만큼 같고 다른지에 대해 파고든다. 법률가가 단어를 다루는 방법의 힘이 느껴지는 부분.

"인간의 존엄성이 사장 극명하게 빛나는 순간은 서로가 서로의 연기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때이다"

(2)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상황,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형편없는 독해력에 대해 독자가 스스로 (추후 방안까지도) 생각해보게끔 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부모 또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는 사실로 (흔쾌히 대답하지 못하는) 독자를 위로하고 있고, 후자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무지에 대해 친절히 알려준다. 사실 이러한 무지들은 대학/대학원 기간의 상당 시간 동안 장애아와 관련된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도 수없이 부딪힌 부분인데 (예를 들면, 점자 도서를 입력하는 봉사를 하면서 해당 기관 선생님들께 일반인들의 인식과 그들이 필요한 도움간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들었던 것) 이 부분은 교육의 영역에서도 많이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물론 여전히 이게 얼마나 무지한 해결책일수 있겠지만, 미국에서 아이 학교에 최근 '트렌스젠더'를 선택한 선생님이 계시고 그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것을 보니, 그리고 결국 이 책에서 공동체의 시선을 하나의 답으로 내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리 불가능한 답안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집단의 인식을 바꾸는 방법중의 하나는 교육이기도 하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다양한고 복잡한 인간의 존재 방식과 언어적 풍성함을 간과하는 일임을 말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버스와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지 복지 정책이 미흡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장애인의 탑승을 고려해 버스를 설계하고 도입하는 일이 경제적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도시의 속도를 지체시키기 때문이라면, 이는 사실상 장애인의 신체 또는 일반적인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이동권은 꼭 사회권의 맥락에서만 고려될 문제인가? 이동권이 자유권의 성격을 갖는다고 상상할 수 있다면, 국가의 최우선적 '배려'안에 반드시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장애를 수용한다는 말의 의미를, 내가 무한히 강해져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살았다. 부모는 약하다. 그들은 자녀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자녀가 온전히 자기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당당히 살아가며 그 역경을 돌파하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3) 자신의 삶이 잘못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꼭 장애가 아니더라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실패한 인생은 아닌가 돌아보는 그런 사람들을 보듬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보통 그저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언급과 정당성을 주장하는 책과는 달리) 결론도 (좋은 책을 써준 작가분께) 고마울 지경이다.

"우리는 부모를 비롯해 우리를 마음 깊이 아끼는 이들이 그랬듯이 스스로를 돌보고 보듬으면서도 우리가 가진 장애와 질병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우리 인격의 고유한 일부이자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성의 한 축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걸까?"

"장애를 가진 내가 잘못된 삶이 아니라는 사실, 실격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우리는 바로 그 장애를 가진 자신을 보듬고 돌보는 일에, 사랑하는 일에 종종 실패한다."

"장애를, 예쁘지 않은 얼굴을, 가난을, 차별받는 인종, 성별, 성적 지향을 지닌 채 살아가면서도 모든 것을 당당히 부정하고, 자신의 '결핍'을 실천적으로 수용하고, 법 앞에서 권리를 발명하는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게 서야만 우리가 존엄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수용하고 돌보려 노력하지만 결코 완전하지는 못할 이 '취약함'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 집단에 속해 있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