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dea of approximation
취업준비는 왜 점점 빨라질까? 본문
www.kcef.com 에 올린 글
2012년 노벨경제학상은 게임이론을 연구한 앨빈 로스(Alvin Roth)와 로이드 샤플리(Lloyd Shapley)에게 돌아갔다. 그들의 공로는 비효율적인 선택이 일어나는 시장에서 비효율성을 크게 낮춰줄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거라고 한다. 예전에 '수익 분배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벨소리등 부가서비스 덕분에 핸드폰 데이터 서비스 매출액이 유의하게 증가했다면, 데이터 접속료 수익의 일부는 벨소리 사업자에게 배분되어야 한다라고 결론내리면서, 이 때 비용을 분배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샤플리값'이라고 했다. 그때 샤플리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마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샤플리와 로스여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EBS에서 바로 그 로스가 노벨경제학상 수상 강연을 하고 있어서 보게 되었다. (동.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다(붙여쓰면 게시판 금지어라고 하네요) http://www.youtube.com/watch?v=A2XXItBvQi8) 로스의 강연에서 가장 재미있고도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설명하고 있는, 그리고 많은 부분을 해결한! 미국 취업시장의 문제점이 한국의 우리들에게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920년대 미국 메디컬 스쿨이 겪은 문제는 한국 로스쿨 등 취업시장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또 그런 문제가 항상 답이 없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 열심히 생각하면 답을 낼 수도 있는 문제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강연 내용은 다음 기회에 따로 요약하기로 하고, 우선 인상적이었던 메디컬 스쿨 부분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병원들은 우수한 메디컬스쿨 학생을 채용하기 위해 경쟁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학생들의 취업시기가 점점 빨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채용경쟁의 영향으로 4년제 메디컬 스쿨 학생들의 취업이 2학년 때 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병원은 어떤 학생이 우수한지 잘 알기 어려웠고, 학생들도 스스로 적성을 파악하기도 전에 취업을 결정해야 했다.
메디컬 스쿨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일정시기까지는 성적 등 학생정보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조기채용을 막고 대신 정해진 기간 동안 모든 병원과 학생들이 참여해서 진로를 결정하는 통합된 채용절차를 마련했다.
그런데 새로운 채용절차에도 문제가 있었다. 여러 곳에서 offer를 받은 학생들이 최종적으로 결정을 할 때까지 추가선발 절차가 정지돼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B, C 세 군데 병원에 합격한 학생X가 최종적으로 A병원에 가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그가 A병원을 선택했다고 B, C에 알려주기 까지는 B, C 병원은 추가선발을 할 수 없다. X가 일찌감치 A병원을 선택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X는 A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정기간 마지막날에 가령 원래 가장 가고 싶어하던 D 병원에서 연락을 받게 되면 결국 D에 갈 수밖에 없고 A병원에는 결원이 생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결국엔 결정기간 마지막 날에 대이동이 일어나는 정체현상(congestion)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로스는 그와 같은 congestion을 해결한 알고리즘을 설명하고 있다. 이 알고리즘은 로스라기보다는 샤플리의 공로지만 재밌는 부분이니 좀 살펴보자. 보통 이런 선발절차에서 병원들은 '합격자'를 우선 결정하고 합격하지 않은 사람들을 잠정적으로 탈락시킨다. 그리고 합격자 중에서 결원이 생기면 탈락자 중에서 순위대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의 문제점은 위에서 본 것처럼 필연적으로 여러군데 중복 합격한 사람들이 생겨도 이들이 선택을 할 때까지 절차 전체가 정지되는 것이다.
Gale/Shapley(1962)가 제안한 deferred acceptance algorithm은 반대로 작동한다. 병원들은 우선 탈락자를 정한다. 가령 10명이 정원인데 50명이 지원했으면 40명을 탈락시키고 10명은 잠정적으로 합격시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1라운드이다. 2라운드에서는 각 병원의 탈락자들을 모두 모아 2지망한 병원에 배정하여 심사한다. 그러면 2지망 병원에서는 앞에서 선발한 1지망 합격자들과 제로베이스에서 비교해서 다시 10명을 뽑고 나머지는 모두 탈락시킨다. 이런 식으로 라운드를 반복함으로써 비가격적 시장에서도 효율적인 matching이 가능해진다는 이론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재밌는 부분은 이런 문제가 한국 취업시장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최근 로스쿨에 다니는 가까운 친구의 취업과정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었다. 로펌들은 우수한 인재를 뽑고 싶어하고, 학생들은 가능한 빨리 진로를 안정시키고 싶어하기에 로스쿨생의 채용시기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3년제 로스쿨생의 채용이 언제부터 가능할 것인지 다들 궁금해했지만, 한 로펌이 2학년 여름방학 때 선발을 해 버리자 그 뒤부터는 2학년 여름방학에 시작되는 것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러다 다른 로펌이 1학년 겨울방학에 채용을 하자 또 채용시기는 1학년 겨울까지 앞당겨져 버렸다.
서울대, 연고대 등 로스쿨 등 몇몇 로스쿨은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학교에서 관리하는 job fair를 만들었다. 로펌들과 학교 학생들이 참가해서 일괄적인 채용이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위에서 본 것과 같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결정기간 마지막 날까지 congestion이 발생한 것이다.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계속중이다. 결정기간 마지막날이면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리는 학생들, 그리고 저녁 6시 무렵 바쁘게 전화를 다니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예가 로스쿨이라 이런 이야기를 적었지만, 학부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졸업했을 때만 해도 졸업직전에 취업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3년 전 쯤 들었을 때는 삼성에서는 3학년 때 취업을 확정짓는다고 하니, 요즘 대학생 친구들이 1학년 때부터 각종 스펙 쌓기에 떠밀리듯 참여하는 것도 이해못할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언론보도를 보면 앨빈 로스가 요즘은 한국 대입제도를 개선하는데 참여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 채용시장도, 다른 많은 영역도 경제학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